눈높이 클래식의 자리매김 - 꾸러기음악회 l 악기야놀자 홈페이지입니다

왜 태교음악으로 클래식을 듣던 유아가, 막상 세상에 나온 후에는 클래식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일까? 혹시 우리의 공연문화는 대중들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한계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고민 끝에 그가 다다른 결론은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정기영(자유기고가)

'눈높이 클래식'의 자리매김

지난 2000년 5월 서울 양재동의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는 한 오케스트라의 창단 공연이 열렸다.
5일 간 1천 석 규모의 공연장을 찾은 관객은 고작 700여 명. 대중들이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클래식 공연의 현주소를 정확히 보여준 공연이었다. 그로부터 불과 3년. 도무지 이루어질 것 같지 않았던 꿈이 현실이 됐다. 요즘 3년 전의 그 음악회가 열리는 공연장은 부모와 함께 공연장을 찾은 어린이들로 북적댄다.
대중과 유리된 클래식 음악을 어린이들에게 보급하겠다는 (사)꾸러기예술단(단장 최신일, 위 사진)의 고집과 끈기가 결실을 맺은 것이다.

대중과 클래식 거리 좁히기 3년
꾸러기예술단의 산파, 최신일 단장. 지난 2000년, 서울 심포니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하던 그는 재정압박을 이기지 못한 오케스트라가 인력을 감축하면서 정들었던 음악의 둥지를 떠난다. 그 뒤 그의 가슴에는 음악에 대한 그리움이, 머릿속에는 '왜 클래식은 대중들에게 외면당할까?'라는 질문이 똬리를 튼다. ;우리는 고고하게 클래식을 고수할테니, 올 사람은 와서 박수를 보내달라'는 클래식 음악계의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그는 대중과 클래식의 거리를 좁히기 위한 길을 찾기 시작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여러 가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왜 태교음악으로 클래식을 듣던 유아가, 태어나서는 클래식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일까? 혹시 우리의 공연문화는 대중들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한계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고민 끝에 그가 다다른 결론은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공연을 감상하는 분위기를 해친다는 이유로 어린이들을 거부하는 우리 음악계의 풍토가 문제였다. "연애하던 시절에는 그나마 공연장을 찾던 젊은이들도 결혼해서 아이를 갖게 되면 공연장을 멀리하는 풍토는 음악계가 자초한 것입니다. 보통 8세 이하 아이들이 입장하는 걸 금지하다 보니 부모들마저 공연을 멀리하게 되는 거죠. 발상의 전환이 필요했습니다."

고민 끝에 그가 생각해 낸 것은 이제까지 클래식 음악회에서 소외됐던 어린이들을 위한 클래식 교육 전문 음악회를 만드는 것이었다.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클래식 음악과 친숙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게 , 장기적으로 클래식 관객층을 두텁게 하는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번스타인이 청소년 음악회를 중요시 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죠."

막상 어린이를 위한 음악회를 시작하고 꾸러기예술단을 꾸리긴 했지만 많은 어려움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어려운 건 역시 재원이었다.
많은 클래식 공연이 대기업 등의 기업체나 유관 정부단체로부터 보조금을 받고 있는 현실이었지만 꾸러기예술단은 자생할 수 있는 수익구조를 갖는 것이 장기적으로 생존할 수 잇는 길이라고 판단했다.
협연자들로부터 후원금을 받는 클래식 음악계의 관행도 문제였다.
"보통 많은 오케스트라들이 신인 연주자들과 협연 계악을 하면서 후원금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관행이 클래식 음악계를 병들게 하는 것입니다. 결국 안정적인 티켓 판매 수익이 근본적인 해결책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무더기로 무료 초대권을 발행하는 업계의 관행도 개선해야 했습니다. 협찬금과 무료 초대권은 밀접한 관련이 있어요. 협찬금을 낸 기업체나 유관 단체의 요구로 무더기로 초대권을 발행해야 하니까요."

단원 가족 · 기자 · 장관도 무료 초대권 없다.
꾸러기예술단은 공연 좌석제를 정착시키고 공연 관계자들은 물론 언론사 기자들, 심지어는 문화관광부 장관에게조차 유료입장이라는 원칙을 적용시켰다. 초기에는 '어디, 얼마나 가나 보자'라는 냉소적인 눈초리들이 있었지만 갈수록 이들의 진심이 받아들여졌고 지금은 티켓 수입이 꾸러기예술단의 주요한 재원이 됐다.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회원을 모집(www.toyconcert.co.kr, 회원 가입 무료)하는 꾸러기예술단의 회원은 현재 1만2천여 명에 이르고 있다.(대략 500명이 매달 신규회원으로 등록한다.) 이들에게는 공연 관람 시 20%의 할인 혜택이 주어진다.

재원 문제외에도 꾸러기예술단이 넘어야 할 산은 많았다. 가장 험난한 난관은 클래식 음악회의 본령을 지키면서도 어떻게 어린이 관객을 유인할 수 있을까라는 문제였다. 이를 위해 꾸러기예술단은 주로 저녁 시간대에 열렸던 공연 시간을 오후 2시부터 5시까지로 폭넓게 했다. "미취학 아동과 학부모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시간대로 공연시간을 조정하고 온 가족이 함께 공연장을 찾을 수 있도록 평일 공연을 주말로 집중시켰습니다."

음악회에 대한 어린이들의 관심을 높이기 위해, 예술단은 음악회 중간에 어린이 합창단과 관객들이 함께 참여하는 동요 부르기 순서를 마련했다. 음악회 프로그램 역시 계절, 자연과 동물, 그리고 지역적 특성을 고려해 테마가 잇는 음악들로 구성했다. 인형극의 형식을 도입해 성우가 음악회 진행을 맡고 성우와 지휘자, 그리고 지휘자와 관객이 대화하는 방식으로 공연을 진행하는 방식도 어린이들의 참여를 높이는데 한몫했다. "처음에는 어린이 관객들의 집중력과 참여도가 떨어졌지만 갈수록 자발적으로 음악을 감상하는 모습을 보고 우리들조차 놀랐습니다."

꾸러기예술단은 클래식 음악에 대한 관심과 이해도에 따라 관객층을 좀 더 세분화하고 교과서에 나오는 클래식 음악을 프로그램으로 편성해 학교 교육 현장과의 연계를 강화하는 한편, 지역적 특성에 기반을 둔 지방순회 음악회를 여는 등 어린이들과 클래식 음악이 만날 수 있는 다양한 경로를 찾고 있다.
"앞으로는 어린이들이 연주에 참여할 수 있도록 연주 교습 프로그램도 운용할 계획입니다." 막연한 꿈을 현실로 만든 최신일 단장은 클래식 음악과 어린이들의 만남을 활성화하기 위해 쉼없이 달리고 있다.

문화시민 2004년 9 · 10월 호 중에서

꾸러기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