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는 로마 교황이 임명하는 대사교가 통치하는 카톨릭 세력이 강한 로마풍의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레오폴트는 바이올리니스트였으며 누나와 동생에게 어려서부터 음악 교육을 시켰는데, 특히 볼프강은 비상한 음악적 재능을 나타내어 주위를 놀라게 했다. 5세 때 작곡을 시작했고 8세 때 교향곡 제1번을, 11세 때 가극 '바스티안과 바스티엔'을 작곡하여 신동으로 소문이 나면서 아버지를 따라 뮌헨을 시작으로 파리 런던 암스테르담 등 각 도시를 돌아다니며 연주를 했다. 10세가 될 때까지 중부 유럽의 거의 모든 도시를 순회했다. ' 천재소년'이라는 갈채 속에 소년 모차르트의 이름은 전 유럽에 퍼졌다. 어린 시절부터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각지의 음악을 접한 경험은 모차르트의 음악적 성장에 큰 보탬이 되었다. 그러나 다른 아이들처럼 정상적인 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세상물정에 어두웠고, 오랜 장거리 여행으로 건강은 좋지 못했다. 모차르트는 예술가 기질이 유난히 강한 음악가였던 탓에 시기하는 사람도 많아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뛰어난 재능으로 많은 작품을 작곡하여 명성을 날리면서도 하이든처럼 안정적인 자리를 잡지 못하고 가난한 생활을 해야만 했다. 베토벤이 작곡할 때 고치고 또 고쳐서 다른 사람이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던데 비해 모차르트는 술술 일사천리로 악보를 써내려갔다. 모차르트의 음악 자체도 술술 써내려간 악보 만큼이나 청산유수처럼 막힘 없이 유려하게 흐르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다. 하지만 쉽게 써내려간 곡들이지만 그 곡 속에는 인간의 기쁨과 슬픔, 고뇌를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있어 세월이 흐를 수록 더욱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모차르트는 세상물정에 어둡고 경제감각이 없었던데다 아내 콘스탄체 역시 낭비가 심해 늘 가난에 시달려야 했고 건강이 악화되면서 35세라는 젊은 나이에 눈을 감았다. 장례비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죽은 대천재 모차르트의 유해는 겨울바람 속에서 빈민 묘지에 버려지듯 매장되었다. 19세기 중반 식물학자이자 열성적인 모차르트 연구가였던 루드비히 쾨헬에 의해 연대순으로 정리된 모차르트 작품 목록이 작성되었다. 이후로 모차르트의 작품은 그의 이름을 따서 K. 또는 KV로 표시되는 쾨헬 번호를 붙여 부른다. |